리스크맨 2008. 11. 11. 08:43

60년대에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닐 때, 학교가 있는 곳에서 이십리 (8Km)나 떨어져 사시던 부모님 집을 떠나 외할머니와 함께 학교 근처에서 지냈습니다. 외할머니는 항상 부지런하시고 연세에 비해서 아주 건강하신 편이셨습니다. 농사도 직접 지으시고 땔감도 직접 장만하시고 우리 형제들 뒷바라지도 하셨는데 그 때 연세가 이미 80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서울로 이사를 오셔서 할 일이 없어지시더니 금방 근력이 약해지시고, 급기야 서울 생활 몇 년 만에 돌아 가셨습니다. 저는 그 때 군 복무 중이라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 보지 못했습니다.

 

아내의 외할머니가 계십니다. 양가를 통틀어 유일하게 생존하시는 어르신이라 명절이면 늘 인사를 다니곤 했습니다. 90세가 가까워 지시면서 근력을 급격히 잃으시고 있다고, 어제 다녀온 아내가 말을 전하면서 자신의 노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를 걱정했습니다. 특히 아들만 있는 우리 집에서는 딸과는 달리 늙은 부모에 대한 수발이 어려울 거라는 지레짐작까지 합니다. 할머니는 아들딸이 이미 집을 떠난 아들네 집에서 매우 쓸쓸하게 지내시며 사람을 그리워하고 계십니다.

 

2000년을 전후해서 6여년 동안 시골교회의 실버부에서 활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골이라지만 300명 정도의 교인이 모이는 제법 큰 교회이고 면소재지인 그 곳은 새로이 전원주거지역으로 각광을 받는 곳이 였습니다. 서울 사람들이 많이 이주를 해 오는 터라 본래 그 곳에 사시던 분들과 새로 이주한 가정의 노인들까지 많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할머니 할아버지들 방을 따로 마련해서 전동의자나 안마기를 설치해서 이 곳에 늘 모여서 교제를 갖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 정도 온천으로 모시고 가서 등을 밀어 드리고 점심식사를 대접하는 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르신들은 이 날을 늘 손꼽아 기다리곤 했습니다.

 

이 때 직접 경험했던 것은 노인이 되면 늘 교제가 부족해 진다는 점입니다. BBC의 행복 조건이 즐거움, 의미, 네트워크 라고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네트워크와 즐거움은 더 중요해 집니다. 하루종일 찾아오는 사람들 없는 집에서 혼자 지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노년인구 비율이 높아졌던 독일에서 경험이 생각납니다. 우리나라 명절과 같은 날이 그 쪽에서는 크리스마스 입니다. 이 때는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크리스마스를 보냅니다. 한 가정에 초대를 받아 갔었는데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날 아들네 집에 초대되어 온 것이며, 본인은 따로 친구와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직 너싱 홈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될 건강상태였고, 혼자 살기 보다는 맘에 맞는 친구와 함께 그룹홈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외롭게 살지는 않았습니다. 이날도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이 끝난 뒤에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시골교회에 있으면서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친구와 함께 살면 어떠냐고 했더니 본인은 그걸 원하지만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 어르신들은 남과 생활을 공유하는 습관이 덜 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내의 외할머니가 혼자 오래 있는 시간이 힘들어, 점차 기력을 잃어 가고 있어서 안타까웠습니다. 다행히 요즘 장기요양보험 덕에 이런 피간호기 노인들에게 좋은 대안이 되고 있습니다. 언론에 이런 저런 부작용을 말하긴 하지만, 이만한 획기적인 복지제도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있겠지만, 점차 개선될 것입니다. 정말 문제라면 예산 때문에 많은 분들에게 이 혜택을 드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전문적이고 또 공동체가 있는 곳에서 지내면 외할머니같은 문제는 덜 합니다.

 

성공적인 노화의 3가지 조건은 노년기간 현재의 풍요로움, 지나간 날의 후회없는 회상, 죽음을 맞이할 에너지 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외롭운 하루 하루가 지속되면서 죽음을 맞이할 에너지를 점차 잃어 간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