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event)
35년도 넘은 일입니다.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저의 절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이였던 용관이가 있었습니다. 용관이 담임이셨던 정진양선생님이 우리의 우정을 늘 지켜보셨습니다. 정진양선생님은 지금 우리 모교의 교장이십니다. 우리 모교의 선배이시기도 한 분이라 후배+제자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분이십니다.
졸업 후 몇일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선생님이 용관이와 저를 맥주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난생처음 술집에 가서 어리둥절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이 술에 대해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나가 조심해야 할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용관이나 저나 술 때문에 크게 문제된 적은 없었습니다. 용관이는 이제 제법 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몇일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월에 와세다 대학을 입학하기로 정해진 막내가, 와세다대학에 다니는 선배들과 모임이 있다고 나갔습니다. 제가 초저녁 잠을 자고 있는데, 거실이 떠들썩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아내의 말을 듣고 제가 무척 놀랬습니다. 선배들 모임에 갔던 막내가 선배들이 주는 술을 거절 못하고 받아 마시다가, 인사불성이 되어 버렸답니다. 그래서 친구가 부축해서 집으로 데리고 왔답니다.
평소에 말이 별로 없고 말썽도 피우지 않았는데, 막상 이런 통과의례를 치르는 아이를 보니 기가 막힙니다. 아이에 대한 credit이 없어지는 내 자신을 느끼고, 이래서는 안되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스트레스를 못 이겨 한번은 교출을 한 적이 있었는데, 연락이 올 때까지 한 나절을 기다리면 별별 걱정을 다 했습니다. 사람은 '방어'적인 습성이 있어서, 그런 염려 끝에 자식과 내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놓아주기를 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를 떠나기 위해 준비작업 하면서, 부모 맘을 떠나게 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사건도 그런 생각을 들게 합니다.
다음날 아침 걱정이 되었던 선배 한 녀석이 전화를 걸어 왔더군요. 제가 전화를 걸어서 점잖게 이런 와세다 대학 한국 학생의 풍토에 대해 부모로서 너무 실망이 크다는 말을 했습니다. 온 나라가 외환부족으로 애를 쓰는 와중에, 귀한 외화를 써가면 외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고작 한다는 것이 후배들 술 먹이는 거냐고. 앞으로 글로벌 리더가 되어 세계 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해 활동할 학생들 생각이 고작 그 정도냐고 나무랬습니다. 그 학생이 말귀를 잘 알아 들어서, 조용한 말투로 전화를 끝내긴 했는데, 잘 선도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제가 서울디지털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강의를 하는데, 학생들 (사실 모두 직장인 입니다)이 MT를 가면 가끔 저도 초대 받아 갑니다. 그런데, 항상 술 판이 벌어져서 저를 실망시킵니다. 이번 학기에 행복과 리스크를 진행하면서, 강원도 주천의 고택에서 MT를 해 보고 싶은데, 그 곳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도 의미 있는 MT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 신학기에 술로 사고 일어나지 않도록 잘 선도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