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리스크/개인위험관리

제3의 인생, 제2의 인생

리스크맨 2009. 4. 14. 07:39

제가 30여년전에 독일유학을 갔을 때, 처음 대학생활을 한 곳이 바로 뭔스터라는 독일 중부의 아름다운 중세 도시입니다. 세계역사에도 등장하는 재세례파의 본거지 였던 곳입니다. 지금도 당시 새장처럼 생긴 감옥에 재세례파 수장을 잡아서 매달아 놓았던 것이 남아 있습니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중간에 A See (아제) 라는 큰 호수가 있어서 정취가 있습니다. 인구는 20여만명되고,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이 자리잡고 있는 대학도시입니다. 내 독일생활에서 첫 발을 내디딘 곳이라 꼭 고향같은 아늑함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처음 생활할 때, 기숙사에 함께 지냈던 한국인 유학생들이 몇 분 있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이원복 교수님도 당시 그 곳에서 만났습니다. 같은 기숙사에서 그 분은 원로(?) 셨습니다. 그리고 음악학을 공부하는 장선생이 있었습니다.

 

이 장선생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한 분의 자제인데, 지금은 본인도 고음악학 분야의 대가가 되어 있습니다. 지난 주에 이 장박사가 (나이가 제 도래 입니다) 모 대학의 전임이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물론 축하 전화도 해 주었습니다.

 

장박사왈, 남들이 다 명퇴하는 시기에 전임이 되었으니 정말 좋다고. 그렇습니다. 남들이 30, 30, 30의 인생에서 2의 인생 30년을 마치고 나머지 30년을 향해 제3의 인생을 시작하는 시기인데, 본인은 제2의 인생을 막 시작했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장박사는 그럴 사연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고등학교에서 5년 가까이 교편을 잡았습니다. 그러다, 음악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 유학을 갔습니다. 그런데, 독일이 인문학, 특히 전공을 살짝이라도 바꾸면 무자비하게 공부가 오래 걸립니다.

 

장박사는 정말 음악학을 제대로 공부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학, 특히 중세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오래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30/30/30이라는 인생도식이 장박사께는 안 맞는 산식이 되었습니다.

 

27/18/A/B 라고 할 수 있는데 A, B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요. 다만, 음악학이 은퇴가 있는 것은 아니니, 상당히 오랫동안 활동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인생 말년에 꽃이 활짝 피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전임하랴, 교회 성가대 지휘하랴, 음학학회와 포름 하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반면에, 30/30/30의 제3의 인생을 사시는 지인이 있습니다. 은행에서 함께 부장으로 근무했던 분인데, 이번에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아주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뒤로 하고 이제 3의 인생으로 나갔습니다. 나눔과 기쁨 재단에서 봉사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틈틈히 배워 두었던 중국어 실력으로 한 교회의 다문화 가정의 멘토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3의 인생을 살는 것도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