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맨 2009. 7. 30. 19:09

최근에 두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그 동안 궁금하게 생각했던 많은 의문을 풀어 줄 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한 권은 예수원에서 사가지고 온 대천덕 신부의 '토지와 경제정의'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제가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대해 가지고 있던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나님이 구원을 무엇으로 정의하고 있는가? 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주고 있습니다.

 

또 한권의 책은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쓴 '위험사회'라는 책입니다. '위험사회 (Risiko Gesellschaft)'는 벡 교수가 제창한 오늘날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이름입니다. 제가 그 동안 위험관리 분야에 대해 생각하면서 가졌던 의문에 대해 한 발 앞으로 나가게 하는 이론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저의 의문은 '과연 현재의 합리주의가 지구를 지속가능하게 해 줄 컨셉인가' 하는 것이였습니다.

 

주제가 너무 방대하지요? 저도 일단 단초를 잡을 것 뿐 입니다. 좀 더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있을 뿐이지, 뿌리를 뽑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중요한 이슈이므로 일단 블로그에 글을 써 봅니다.

 

정의를 가리운 성경번역의 오류

 

대천덕 신부는 '토지와 경제정의'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 레위기에서 '토지는 자신에게 속한 것이라'고 천명하십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공의로움을 요구하시며 서로 착취하는 일, 특히 약하고 힘없는 사람을 이용해 먹는 일을 금하십니다. 실제로 구약시대에 7-800년 동안 토지의 사유를 금하는 국가제도가 아주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다고 합니다.

 

대천덕 신부는 위 책에서 (151페이지) 친구인 프레드 해리슨이 보내온 편지를 소개하면서 성경이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심하게 왜곡되었다는 말을 인용합니다. 예를들면, 마태복음 5장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에 대한 해석입니다. 예수께서 무리 앞에서 외치는 말씀입니다. 이 대목의 원래 뜻은 '억압당하는 자들이 빼앗긴 땅을 되찾게 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부자들을 무척 당황하게 만드는 대목이지요.

 

구약의 희년에 관한 규약이 있습니다. 49년에 한번씩 희년이 돌아오는데 이때에는 빼앗긴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아무 댓가 없이 되돌려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께서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16, 17세기에 탐욕적인 지주제도가 영국에서 시행되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번역자가 지주의 눈치를 보느라고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를 '온유한 자'로 적당히 번역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당시 기존 체제를 뒤집어 엎는 혁명적인 생각을 사람들에게 겁없이 전파하고 있었으니 기득권자들이 이를 가만 둘 리가 없었고 급기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설명이 뒤이서 풀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그대로 믿기 어려운 대목들이, 미사려구 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이 대천덕 신부의 해석에 의하면 원래 히브리어, 그리스어 성경의 오역이라는 겁니다. 그러 인해 교회가 오늘날 '정의'로움과 멀어 지는 직무유기를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는 끝없이 토지와 경제정의에 대해 외쳤습니다. 오늘날 성토모라는 모임과 예수원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성토모는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 입니다.

 

성경을 한번 제대로 연구해 볼 이유가 생겼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저 좋은 말로 우리의 삶을 위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내용을 좀 더 심도있게 탐구 해 봐야 겠습니다. 왜냐하면, 토지정의를 실천하지 않는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Meta Risk Management에 속한 다고나 할까요.

 

다음 글에서는 위험사회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