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과 사회적 포지셔닝
제가 요즘 시내에 나가면 늘 하는 취미가 하나 생겼습니다. 각 서점에 있는 중고서적 코너를 들려서 책을 고르는 것인데, 매번 쓸만한 책을 만나곤 합니다. 옛날에 고서 뒤지기를 하는 사람들 취미가 이해가 갑니다. 지난 주에도 중고 서적코너에 들렸다가 "10년 후, 나" 라는 아래 그림의 책을 만났습니다. 3000원 주고 샀으니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이 책은 일본인 컨설턴트가 쓴 책인데, 제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많이 들어 있어서 가끔 읽어 보면 아! 그렇지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일본은 아시다시피 독서 인구가 많아서 책을 쓰면 대개 많이 팔립니다. 그래서 저자도 많고 그러다 보니 이색 분야에 좋은 책이 출간되고 있습니다.
사족이 좀 길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어제 밤에 제 블로그를 읽고 보내온 멘토링 메일 때문입니다. 멘티의 청도 있고 해서 멘티에 대한 정보는 밝히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이 경우에 꼭 필요한 설명을 위의 책을 빌어서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아래 표를 봐 주세요. 제목은 제가 전문성 심화와 사회적 포지셔닝이라고 붙였습니다. 책에서는 "내가 힘을 발휘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목표로 해야 하는 포지션" 이라는 이름이 붙은 표인데, 제가 약간 정리를 했습니다. 요즘 상황을 아주 잘 나타내 주는 내용입니다.
위의 x축은 전문성의 수준을 나타내고, y축은 시간당 단가를 나타냅니다. 시간당 단가는 소득, 사회적 인정 정도 등과 같이 좀 더 확대해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x, y축을 4분면으로 구분하여 1분면, 2분면, 3분명, 4분면으로 표시합니다.
4분면은 하는 직무가 매뉴얼에 의한 단순업무 수준입니다. 기술/지식 수준이 낮은 업무라 누구나 조금만 배우면 쉽게 숙달할 수 있습니다. 88만원 세대의 아르바리트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당 임금수준도 매우 낮습니다. 지난 10여년간의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물결의 희생자들이 대개 여기에 속하게 됩니다. 임금은 낮고 노동시간은 길고, 또 거기다 일자리를 두고 경쟁도 심합니다.
다음 3분면은 4분면과 같이 단순한 업무이긴 하지만 3D나 특이한 분야입니다. 전문성 수준은 높지 않지만, 특수한 수요가 있고 또 경쟁도 심하지 않아 그런대로 시간당 고소득을 올리는 분야입니다. 그러나 장래의 수요가 불투명합니다. 리스크가 높은 분야입니다. 아니면 자신이 큰 자본적인 리스크를 지므로 진입장벽이 낮는 분야도 여기에 속한 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1분면입니다. 이 분야는 시간당 단가가 매우 높습니다. 고소득 고지위를 보장 받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높은 전문성과 고도의 숙력기술, 리더쉽까지 갖추어야 합니다. 지식사회에서 전문가가 추구하는 지향점이기도 합니다. 이 수준에 도달하고 전문성, 언어능력,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한 사람들을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2분면은 1분면 수준의 전문성을 갖추었지만 은퇴나 본인의 가치관 등의 연유로 경제적 보수는 낮은 자원봉사, 사회적 NGO활동 등과 같은 영역입니다.
이런 모델화는 물론 이론의 여지도 있고 한계도 있습니다. 모든 현상을 간단하고 일목요연하게 모델화 하는 과정에서 항상 발생하는 한계 입니다. 그러나 시사점이 많고 또 현상을 설명하는데 아주 유용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 졸업생들이 88원세대로 전락하거나 또는 취업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대학에서 4분면을 벗어나 1분면으로 지향할 수 있는 컨텐츠 (지식, 언어, 리더쉽 등)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1분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능력평가나 성과평가를 제대로 하는 장치가 미흡합니다. 그러다보니 고시라든가 출신대학과 같은 "형식적 결과"에 의지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신림동 고시촌에서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소수만 물론 성공하고 나머지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리스크가 매우 큰 프로젝트 라고 할 수 있지요.
이제 내일 모래면 수능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이 또한 일부 일류대학 입학을 위한 경쟁입니다. 일류대학을 나오면 대개는 1분면으로 가는 길에서 우선권을 갖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으로 선진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학벌과 고시, 국가자격 등 형식적 결과의 영향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측합니다. 이러한 틀을 과감히 깨고 나가려는 노력이 개인의 미래를 크게 좌우할 것이라고 보고, 우리 두 아이의 교육도 그런 방향으로 인도했습니다.
지금 4분면에 있거나 1분면, 2분면에 들어 있는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녀들의 미래를 위한 멘토링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활동하는 대상을 넓히는 대안이 하나 있습니다. 국내 보다는 국외에서 기회를 찾아 보는 겁니다. 제 친구의 조카는 국내에서 4분면에 속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는데, 미국유학 (커뮤니티 대학)을 통해 지금은 스탠포드 대학의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이미 1분면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멘토링하는 아프리카의 한인 사업가는 아프리카 전문가로서 앞으로 많은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래에 유망하고 자신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를 찾아 2분면으로 진입하고 다시 1분면으로 가도록 중장기 계획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멘토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분석해야 합니다. SWOT분석이나 자기변화 계획을 통해 4분면을 탈피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 하나는 바로 3분면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형편에 맞도록 목표수준을 낮추고 생애비용 구조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전원생활이나 지방, 때에 따라서는 후진국 진출 등을 통해 전략적이고 과감한 선택을 하면서 속편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