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로벌 경영경험 (2) - 종합상사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와 지내는 아들들이 휴식을 취하는 기간입니다. 딱히 하는 일이 없어 우리 교회의 지인이 보안카메라를 수출하는 회사를 경영하는 곳에, 수출지원을 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큰 아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대학을 이번에 졸업한 늠름한 청년입니다. 프랑크푸프트는 워낙 박람회가 자주 열려서 그 곳에서 가끔 한국회사가 전시를 나올 때, 통역을 하기도 해서 경험이 많습니다.
그런데, 별로 할 맘이 없다고 합니다. 저는 좀 아쉽기는 하지만,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글로벌 경험을 많이 해서 그런지 그런 제안이 별로 신선한 것 같지 않나 봅니다. 큰 은행에서 일하고 싶어하는데, 군 문제도 있고 해서 아직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제가 유학 후에 독일에서 했던 일이 바로 한 종합상사의 현지 수출 매니저 일이 였습니다. 큰 아이와 아내를 쾰른에 두고 저만 프랑크푸르트에 내려와서, 이 회사에서 한국으로 수출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번에 강의를 준비하면서 종합상사의 발전과정을 살펴 보니, 당시에 제가 경험했던 일들이 아 ~ 그런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하게 되었습니다.
1975년에 우리나라는 일본 종합상사를 모델로 종합상사법을 만들어 수출을 지원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종합상사맨들이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된 직업이었습니다. 지금 S전자의 CEO인 분들은 당시 모두 종합상사에서 수출 개척을 했던 베테랑들입니다. 수출입국이 이렇게 시작된 셈이지요.
90년대 들어서 종합상사들은 매출기준이 수수료로 제한되고, 종합상사에 대한 특혜가 사라지면서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해외 자원개발과 같은 특수한 분야에서 신수종사업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제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이 일을 하던 1988년에는 국내에 각 재벌기업들이 종합화학 플랜트, 반도체 공장, 중공업 시설 등을 확충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로 했던 일도, 재벌기업의 다른 자회사에서 공장을 지을 때, 이에 필요한 설비를 구입하여 보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눈썰미가 좋아서,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적인 시설 즉, 공장이나 토목시설과 같은 것은 아주 쉽게 벤치 마킹을 했습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설비라도 유럽기업의 시설을 한번 보고, 그것을 제작한 회사의 도움을 받으면 곧바로 따라 잡았습니다.
나중에는 유럽기업들이 한국 시찰단의 공장 견학을 주저하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역분업에 의한 사상을 가지고 있으니 그들은 눈에 보이는 노하우는 우리나라와 같은 개도국에 전해 주고, 다른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찾아 더 많은 연구개발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응용에는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유럽의 엔지니어링 기술을 속속들이 추월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국제 기업간 M&A 분야에서 국내의 응용기술과 유럽의 기초기술이 합해지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아마도 점점 더 많은 한국기업이 유럽의 기초기술을 응용분야에 더 활성화 하기 위해 유럽기업을 인수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는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은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의 유럽기업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분적으로라도 우리나라 기업들은 더 부가가치가 높은 곳으로 활동영역을 넓혀 가야 합니다.
20년 전 유럽 이곳 저곳의 박람회장을 누비며, 한국에서 온 오더를 수행하기 위해 기술과 제품을 가진 회사들을 찾아 다니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인터넷이 있어서 이런 일이 아주 손쉬워 졌습니다. 세계화 3.0 시대 즉, 개인의 세계화 시대는 앞으로 점점 심화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