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서(사전의료의향서)란?
1. 사전의료 의향서란?
사람의 삶은 일회적입니다. 에릭손(사회심리발달이론가)은 삶을 8단계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1-4단계는 유아기에서 11세까지의 단계이며, 5단계는 정체감 혼미 시기로서 11-20세 입니다. 흔히 사춘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6단계를 성인초기 (21-24세), 7단계를 성인기(25-65세)라고 합니다. 8단계가 노년기로서 65세 이후 죽음까지의 단계입니다. 이 8단계를 노년학에서는 다시 활동기, 은둔기, 피간호기로 나누기도 합니다. 저도 이 구분에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간호기는 자리 보전을 하면서 간호를 받게 됩니다. 또 활동기나 은둔기라도 사고나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면 연명치료를 받게 될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의술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연명치료기술이 환자에게 적용됩니다. 물론 대부분의 연명치료는 좋은 일입니다. 간혹 무의미한 연명치료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사전의료의향서(事前醫療意向書)란 내가 죽음에 임박한 상황이 닥쳤을 때 무조건 연명치료를 할 것이 아니라 어떤 치료는 하고 어떤 치료는 하지 말아 달라는 의사를 미리 밝혀 놓는 서류입니다. 우리보다 성숙한 사회에서는 Advanced Medical Directives라고 하며,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최근들어 사전의료의향서(이하 사의서라고 줄임)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유의 하나로는 호스피스 제도의 활성화를 들 수 있습니다. 호스피스란 '더 이상 치료될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까지 풍요로운 마음으로 충실한 삶을 보낼 수 있도록, 보다 참되고 의미있게 살아가게 하기우해 시행되는 모든 지원활동'을 의미합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지내는 분들은 죽음에 대해 마음으로 준비하고 그 과정을 준비하게 됩니다. 의식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마지막 준비가 바로 사의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는 지금 위험사회 (Risk Society, Risiko Gesellschaft)에 살고 있습니다. 위험사회의 특징은 이전 시대에 비해 인과관계 없이 불의의 사고에 직면하는 경우가 더 흔해 졌습니다. 멀쩡한 사람도 갑자기 사고로 연명치료를 받을 지경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때 회생의 가능성이 없다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미리 의사를 밝혀 두자는 취지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구나 나이가 들고 피간호기에 이르면 죽음을 앞두게 됩니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신이 연명치료여부에 대한 의사를 밝힐 수 없는 상황이 옵니다. 이 때를 위해 의식이 명료한 시기에 사의서를 작성해 두는 것입니다.
2. 왜 사의서가 필요한가?
이전과는 달리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호스피스 돌봄을 받는 사람들이 임종을 맞이하고 싶은 곳은 47%가 가정이며, 32%가 병원입니다. 가족은 51%가 가정을, 30%가 병원을 임종 장소로 삼고 싶어합니다. 이런 바램과는 달리 대부분의 죽음은 병원에서 맞이하게 됩니다.
환자가 병원으로 이송되면 의사와 가족은 생명연장치료를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생명연장에 조금이라도 소홀함이 있으면 법적으로 살인죄가 성립될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의사가 비슷한 상황으로 살인죄로 재판을 받은 예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법으로는 사의서가 존재하지 않으면, 생명연장치료에 대한 의사결정을 의사와 가족은 내릴 수가 없습니다. 오직 환자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의사결정인데, 환자는 의사결정을 할 정신적 상태에 있지 않습니다. 사의서가 있다면,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앞으로 병원에서 사망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사의서를 써야 하는 대상이 됩니다. 우리나라에 일년에 25만명이 죽음을 맞이하며, 이 중 3만 명이 연명치료를 받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습니다. 이 중 83%는 1주일 안에 죽음을 맞이하므로, 실제 1주일 이상 연명치료를 받는 사람은 17% 정도입니다. 이 17% 안에는 그러나 상당히 오랜 기간 연명치료를 받은 불행한(?) 경우도 발생합니다. 이 17% 안에 들지 않기 위해서 (리스크관리는 5% 이하의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 리스크관리를 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사의서 작성입니다.
3. 사전의료의향성에 대한 우리나라의 동향
현재까지 사전의료의향서에 대한 법률적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례로 인해 (김할머니 사건 등)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해 이슈가 되었으나 아직 법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실제 제가 보건복지부나 일시적으로 활동했던 사의서 관련 기관에 전화를 해 보면 담당자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운 감자를 대하는 듯 했습니다. 그만큼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엉켜있고 생명에 대한 종교적 도덕적 견해까지 감안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그 동안 각당 복지재단이라는 곳에서 사의서의 필요성에 대해 알리고 실제 사의서를 작성하여 보관하는 일을 한 적도 있습니다. 얼마전 사전의료의향성 실천모임이라는 NGO가 발족되면서, 사의서 양식 발송이나 교육에 대한 일을 이 곳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의서의 법적효력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지만, 대법원의 판례는 사의서를 작성해 둔다면, 인정한다는 취지입니다. 더 확실히 하고 싶다면, 사의서를 공증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사의서 관련 법률서비스를 변호사로부터 받는 방법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