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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지능과 결정형 지능

리스크맨 2008. 8. 3. 14:51

독일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독일을 떠나서는 독일은행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느꼈던 점이 나이와 직급에 대한 인식의 차이입니다. 독일 코메르쯔은행에 연수를 갔을 때 그 은행의 성과관리를 담당하는 팀에서 몇 주간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팀의 팀장은 30대 중반의 여성이였고 팀원들은 50대 초반의 남성들, 30대 젊은 직원 등 다양했습니다. 당시 만 해도 대체로 연공서열에 의해 나이가 든 사람이 상위 직급에 있는 것이 한국 직장의 자연스러운 모습이였습니다.

 

독일에서 직급과 나이의 비 상관성을 많이 보고 경험했지만, 한국인인 저로서는 특이하게 느껴지는 모습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팀과 한 동안 함께 지내면서 그런 mix가 자연스럽게 작동할 수 있는 원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제가 느꼈던 점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 중 한 가지가 이들의 공과 사의 구분이였습니다. 회사의 직무수행에 있어서는 지시하고 그 지시를 따르는 상하관계에 있지만, 그 외의 생활에서는 그런 상하 관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점심식사를 하러 간다든지,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던지 할 때는 전혀 상하관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 다른 점은 직무의 객관성입니다. 지시 대상인 직무가 매우 객관성이 있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나이와 상관 없이 전문성으로 상하관계가 가능해 진다는 점입니다. 우리 나라의 회사 생활에서는 직무의 객관성이 결여 되어 있고 품의 제도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 집니다. 그래서 상관의 지시라는 것이 '뭔가 좀 어색하다! 회의자료가 뭔가 덜 전략적이다! ...' 이런 식입니다. 도대체 위 사람의 업무 지시가 객관성이 떨어 집니다. 이런 지시를 나이 어린 상관이 할 수는 없지요. 물론 오너 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직장에서의 상하관계에 있어서 나이가 매우 중요합니다. 정부의 고위 관리직에 행시 몇 기, 사시 몇 기가 임명되면 이 이하의 기수는 모두 옷을 벗어야 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한 회사의 CEO가 나이 젊은 사람으로 바뀌면 임원들이 자리를 비워 줘야 합니다. 만약 임원들이 이행 해야할 직무가 매우 객관적이고 구체적이라면, 이런 이유로 임원을 갈아 치워야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신체 기능이 저하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시력을 보더라도 정점을 100이라고 본다면, 40대가 되면 90, 70, 80대가 되면 무려 30까지 그 능력이 저하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든다고 두뇌 기능 또한 저하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합니다.

 

지적기능은 유동성 지능 (Fluid Intelligence)과 결정형 지능 (Crystallized Intelligence)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유동성 지능이란 추리능력, 연산능력, 기억, 도형지각능력 등 경험과 무관한 지능입니다. 반면에 결정형 지능은 어휘, 일반상식, 언어이해, 판단과 같이 경험, 훈련 및 교육 등의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달, 축척되는 문화적 지능을 말합니다.

 

사람의 지능은 젊어서는 유동성 지능이 우세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는 사회생활과 일상적인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꼭 필요한 판단력의 기초가 되는 결정형 지능이 강화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들더라도 사람의 지능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노화학자들의 주장이 있습니다.

 

선진국으로 갈 수록 전문성이 깊은 전문가가 나이에 관계없이 의사결정에 깊숙히 관여합니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어 결국 사회적 비효율을 초래하는 일이 흔합니다. 그래서는 국민소득 3만불의 고효율 사회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나이에 무관하게 전문가들이 영향력이 큰 직무에 참여할 수 있는 풍토가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