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울리히 백 교수의 위험사회
유럽의 중소국들의 삶은 질이 상위권에 속합니다. 1위인 오스트리아를 비롯해서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가 10위 안에 있고 독일이 11위입니다. 우리나라는 39위, 일본은 29위입니다. 이런 순위가 몇몇 지표에 의해 정해지므로 반드시 옳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보편성을 갖습니다. 1980년부터 2003년까지 20년이 넘도록 독일에서 생활하거나 그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제 나름대로 답을 구해 보려고 애썼던 의문이 독일사회의 운영체계였습니다. 자원이 풍부하지도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특별히 우수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잘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의 해답은 3 가지입니다. 이익집단의 발달, 대화에 의한 교육, 대화에 의한 정치입니다.
Gesellschaft라는 독일어가 우리나라 사회교과서에 나옵니다. 이 게젤샤프트라는 개념은 독일의 특징인데, 이익사회라는 뜻입니다. 독일에서는 조기축구회를 구성해도 반드시 사단법인으로 등록을 합니다. 세금, 공공지원 등 혜택이 있지만, 재단이 해체될 때 재단의 재산은 국가에 귀속됩니다. 수 많은 이익단체가 정치활동의 핵심인 정당가입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정당은 지연, 혈연, 학연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집단 활동의 하나로 간주됩니다. 대화에 의한 교육과 정치는 다음 기회에 제 경험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난주에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한 분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습니다. 울리히 백 (Beck)이라는 분인데, 위험사회 (Riskogesellschaft)란 책을 1986년에 출간하여 유럽 최고의 석학의 반열에 오른 분이라고 합니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리스크관리를 10년 넘게 했다는 제가 이 분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물론 제가 공부할 때는 경영학에서 리스크관리는 아직 학문의 대상이 아니였습니다. 조직의 리스크관리가 재무리스크를 넘어 운영리스크로 확산되는 경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전체의 리스크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발견하는 것이 운영리스크관리에 참고가 됩니다.
‘위험사회’에서 백 교수는 현대 산업사회를 참으로 아슬아슬한 ‘위험사회’라고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대 산업사회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은 5가지로 정리합니다. 인간의 평상적인 지각을 넘어서는 상황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요?), 사회적 약자는 위험의 분배와 증가에 더 많이 노출되는 현상, 위험의 상업화에 의한 자본주의의 업 그레이드 (예를 들면 보험산업), 부의 소유로도 사회의 체계적 위험을 무한정 회피 불가, 사회적으로 공인된 위험의 정치적인 폭발력 (새로운 정치이슈의 등장) 입니다. 백 교수의 이론이 우리나라에는 어떤 시사점을 갖는지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우리사회의 체계적 위험이 재무적 리스크나 비재무적 리스크 형태로 개별 조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좀 더 연구해 봐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생각해 냈던 3가지 해답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진작부터 시작된 위험사회에 대한 연구와 공론화입니다.
* 어제 메모에서 벤허가 전차경주를 앞두고 왜 투구를 벗었는지에 대한 의문에 한 분이 메일로 영화 마니아로서의 명쾌한 답을 주셨습니다. 제 책을 선물로 보내 드렸지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다음은 중앙지점 송치열님의 코멘트입니다.
벤허와 관련한 저의 생각은 주인공이 투구를 벗은 것이 안전과 관련해서는 잘못된 것이지만, 영화적인 표현과 관련해서 훌륭한 리스크 극복의 대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구도는 선과 악의 대결입니다. 물론 선이 이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악과 동일한 방법으로 이겨서는 안됩니다. 악은 겉으로 드러나 있는 무기 -벤허의 경우 전차의 칼날, 투구, 채찍- 가 그들의 힘을 대변하지만 선은 그들과 동일한 방법으로 이겨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의지, 유혹에 대한 저항 등이 선의 무기가 됩니다.
만약 투구를 벗지 않았다면 선의 이러한 측면을 영화적으로 보여주기가 무척 어렵게 됩니다. 선이 겪고 있는 고민과 갈들, 고통이 보여지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같이 투구를 쓰고 있다면 관객의 입장에서 그들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영화 속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로보캅'은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강력한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로보캅이 악의 본거지에 가면서 정작 가장 약한 부분인 얼굴을 다 드러내고 있습니다. 몸은 강철일지 몰라도 얼굴은 인간의 것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가려야 하는 부분인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을 가렸다면 관객은 그의 고민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가 과연 '선'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지도 알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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