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k Concept/CRO-Letter

김중구 CRO-Letter (4) 명화 벤허에서 엿보는 리스크관리

리스크맨 2008. 4. 8. 13:47

김중구 CRO-Letter (4) 명화 벤허에서 엿보는 리스크관리

 

찰톤 헤스톤이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지난 주말 톱 뉴스였습니다. 찰톤 헤스톤은 총기사고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미국에서 총기소지를 주장하는 총기협회 회장을 맡는 등 정치적인 행보에 논란이 있었지만, 전세계인에게 사랑 받는 명배우였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영화 벤허는 1959년에 제작되었지만, 지금도 영화의 classic으로 남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지 얼마 후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이스라엘에 새로운 총독 그레이드스가 부임합니다. 그 선발부대로 주둔부대 사령관이 호민관 맷사라인데 그는 예루살렘에서 제일가는 명문가 벤허(찰스 헤스톤)와 어렸을 때 친구였습니다. 신임 총독 취임식 날, 장쾌하고 화려한 행진을 구경하던 누이 틸자의 발 밑에서 기와 한 장이 떨어져나가 공교롭게도 신임 총독의 머리에 맞습니다. 이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벤허 일가는 반역죄로 몰려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지하감옥에 갇히고, 벤허는 노예로 끌려가는 가문의 몰락을 맞게 됩니다.

 

기와장이 담장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건은 벤허가의 책임하에 있는 영역에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전형적인 리스크 이벤트입니다. 리스크분석에서는 리스크원인, 사고유형 (Event Type) identification이 중요합니다. ‘기와장사건은 사업장의 안전과 관련된 사고유형입니다. 어찌 이러한 기왓장 사고가 영화 속 만은 일이 겠습니까. 우리나라처럼 4계절이 뚜렷한 곳에서는 해빙기에 늘 유사한 사고가 발생합니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울리히 백 (Beck)교수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개발도상국이 전형적인 위험사회라고 말합니다. 백교수는 위험사회라는 명저를 1986년에 출간해 유럽 최고의 학자 반열에 오른 분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는데, 저의 리스크관리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업 그레이드 할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위험사회에서 백교수는 현대 산업사회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은 5가지로 정리합니다. 인간의 평상적인 지각을 넘어서는 상황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요?), 사회적 약자는 위험의 분배와 증가에 더 많이 노출되는 현상, 위험의 상업화에 의한 자본주의의 업 그레이드 (예를 들면 보험산업), 부의 소유로도 사회의 체계적 위험을 무한정 회피 불가, 사회적으로 공인된 위험의 정치적인 폭발력 (새로운 정치이슈의 등장) 입니다.

 

저의 지인 중에 교육학자 한 분이 있는데, 영화로 본 교육학이란 책을 오래 전에 출간했습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영화의 스토리를 소재로 교육의 이슈들을 흥미 있게 해석하고 있는 책입니다. 리스크관리라는 다소 생뚱 맞은 소재를 우리 주변 가까이로 끌어와 일상화하는 것이 바로 리스크관리 문화의 전파입니다. 벤허를 보면서 지금도 리스크 매니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전차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벤허가 투구를 벗는 장면인데, 리스크 방비도구인 투구를 왜 벗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최근 우리 회사 사내에 이 글을 띄웠더니 한 직원이 다음과 같은 훌륭한 견해를 보내 왔습니다. 원문대로 소개 해 봅니다.

 

안녕하십니까! 중앙지점 신입사원 ooo 입니다.

평소 전무님께서 올리시는 글을 읽고 있다가 언젠가 인사라도 드리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벤허 관련한 글을 읽고 좋은 기회인 듯 해서 감히 메일을 보내드립니다
.

우선 벤허와 관련한 저의 생각은 주인공이 투구를 벗은 것이 안전과 관련해서는 잘못된 것이지만, 영화적인 표현과 관련해서 훌륭한 리스크 극복의 대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구도는 선과 악의 대결입니다. 물론 선이 이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악과 동일한 방법으로 이겨서는 안됩니다. 악은 겉으로 드러나 있는 무기 - 벤허의 경우 전차의 칼날, 투구, 채찍 - 가 그들의 힘을 대변하지만 선은 그들과 동일한 방법으로 이겨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의지, 유혹에 대한 저항 등이 선의 무기가 됩니다
.

만약 투구를 벗지 않았다면 선의 이러한 측면을 영화적으로 보여주기가 무척 어렵게 됩니다. 선이 겪고 있는 고민과 갈들, 고통이 보여지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같이 투구를 쓰고 있다면 관객의 입장에서 그들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영화 속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

영화 '로보캅'은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강력한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로보캅이 악의 본거지에 가면서 정작 가장 약한 부분인 얼굴을 다 드러내고 있습니다. 몸은 강철일지 몰라도 얼굴은 인간의 것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가려야 하는 부분인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을 가렸다면 관객은 그의 고민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가 과연 ''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지도 알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

쓰다 보니 너무 길어졌습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전무님의 좋은글 항상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이런 메일을 받으면 글쓰는 고통도 한번에 사라집니다. 이 직원에게 제 책을 한 권 선물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