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제가 사는 곳은 반포의 서래 마을입니다. 여의도가 직장이라 2년 반 동안 여의도의 주상복합에서 살았는데, 편리하긴 하지만 뭔가 빠진 것이 항상 있었습니다. 땅을 디디고 살지 않는 생활에서 오는 지기 (땅의 기운)를 받지 못해서 입니다. 주상복합은 어찌 보면 창살없는 감옥과 �습니다 (편리하게 느끼는 분들도 많으니 이 건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고층은 쪽창 만 경우 open 할 수 있어서 한 여름이면 에어컨을 켜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에어컨 바람은 오래 쐬일 수가 없습니다.
2007년 6월에 금강산의 한 세미나에 다녀 오다가 서래마을에 사는 지인 부부를 모셔다 드린 적이 있어, 저희 부부는 처음으로 서래마을을 가 보았습니다. 한 동안 프랑스 영아 살해 사건으로 언론에 등장했던 마을인데, 막상 가 보니 꼭 유럽의 한 동네를 온 것 같은 느낌이였습니다. 아파트는 없고 주로 빌라로 이루어진 마을인데, 서래마을 즉, 마을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동네 였습니다.
이 곳이라면 서울살이도 할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시간이 나는 여름 날 동네를 둘러보고 부동산 중개소에 들러 구입할 집이 있는 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는 조그만 빌라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외지나 기숙사에 나가 있어서 어차피 부부만 사는 공간이면 되므로 작은 공간으로도 충분합니다.
길 건너에는 반포 종합운동장이 있고, 구반포 아파트와 강남고속터미날 까지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법원 뒤 몽마르뜨 공원이 맘에 듭니다. 이 서래마을의 가치를 더욱 빛내주는 것이 바로 서래풀 공원입니다. 서울에서 집에서 걸어서 산을 다녀 올 수 있는 마을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이 곳에 자리를 잡은 지도 한 해가 되어 갑니다.
이 곳에는 프랑스 학교가 있어서 원래는 프랑스 인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이제는 TGV 프로젝트도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어서 프랑스인들은 많이 줄었고, 그 자리에 영국, 미국, 독일인 가족들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코메르쯔은행에 있을 때, 서울사무소장이 독일인이였는데, 성북동의 집세가 장난이 아니였습니다. 물론, 회사에서 부담하는 집세니 그 높은 임차료를 감당할 수 있었겠지요.
성북동이나 이태원에 비하면 이 곳은 외국인이 살 만한 인프라가 되어 있고, 집세도 적정한 수준이라 프랑스인들이 살던 자리를 다른 서구인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우리 집 큰 아이가 소위 cold contact (낯선 사람들과 사귀는 것)에 능합니다. 어느 날 서래마을 동네 수퍼에서 독일 아줌마를 만나서 서로 relationship를 트게 되었습니다. 그래놓고 아이는 독일로 가버리고 그 독일 아줌나는 저희 아내 친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제가 아내의 생일이였는데, 이 동네에서 사귄 여자친구 (산드라와 에스델) 서종면과 수종사를 다녀 왔습니다. 수종사는 운길산에 있는 옛날 세조대왕의 전설이 어린 절인데, 찻집이 절경입니다. 이 찻집에서 맛있는 차를 마시며 양수리와 팔당댐을 내려다보는 경관은 서울 주변의 가장 아름다운 경치 중에 하나 입니다. 또 문호리의 북한강변에는 스위스 제네바 로만 호수에 버금가는 운치를 자랑하는 카페가 있습니다. 이 두 곳을 다녀 왔는데, 산드라가 아주 뿅 갔다고 합니다.
사실 유럽의 전원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서울이 우리나라의 전부 인 줄 아는데, 이런 경치가 서울과 같은 메트로 시티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서래 마을에서 사귀는 외국인 이웃들에게 이런 서울 근교의 아름다운 곳을 안내하는 것이 우리 집 임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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