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일상의 아름다움

예수원의 향기

리스크맨 2009. 7. 18. 17:27

예수원은 방문은 내가 은퇴 후에 하고 싶은 일 목록에 올라 있는 곳입니다. 공동체 삶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은퇴를 하면 세계 곳곳에 있는 공동체를 찾아가 일정 기간 동안 살아 보려고 합니다. '세계 어디에도 내집은 있다' 에 소개된 곳을 보고 생각했던 일입니다. 그 책의 목차에는 다음과 같은 공동체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남인도의 오로빌과 영국의 브루더 호프 같은 곳이 꼭 가고 싶은 곳입니다.

 

'세계 어디나 내집은 있다' 의 목차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틱낫한의 걷기 명상-플럼빌리지 ... 15
죽음을 넘어선 자비의 힘-사르보다야 ... 33
명상의 도시-오로빌 ... 61
외침보다 큰 울림-떼제 ... 85

새 하늘 새 땅
미래의 마을-메헌세스 ... 109
작은 것이 아름답다-슈마허 대학 ... 133
평화의 숨결-우드브룩 ... 149
세계의 젊은이여 오라-핀드혼 ... 167
꿈은 이루어진다-트윈오크스 ... 193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
오지의 생태마을-아젠다 ... 219
무소유의 실천-토요사토 ... 245
마음으로 통하는 친구들-제그 ... 271
천국을 이 땅에-브루더호프 ... 291

 

이번 주 초에 2박3일 동안 강원도 태백에 소재해 있는 예수원을 방문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드디어 시간을 냈습니다. 예수원은 내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대천덕 신부님이 살아 계셨던 때에 다녀 왔었더라면 더 큰 감명을 받았을 것같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대천덕 신부님의 자서전과 평생 심혈을 기울여 쓰신 '토지와 경제정의'라는 책을 사 왔습니다. 그리고 대천덕 신부님의 토지사상에 영향을 끼친 미국의 사상가 헨리 조지의 책 '진보와 빈곤'도 구해 왔습니다. 한참을 공부할 자료를 가지고 돌아온 셈입니다.

 

사진을 보면서 간단하게 제 느낌을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내하는 자매님의 말씀이 너무 많은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아서 내부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은 자제해 달라고 해서, 사진을 많이 찍지는 않았습니다. 예수원의 귀한 정신을 더 귀하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손상시키고 싶은 맘은 조금도 없을 정도로 아주 귀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래 사진은 예수원 골짜기 아래의 마을을 지나 예수원 초입으로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입구 표시입니다. 십자가와 세개의 돌 기념비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왼쪽의 비석은 2002년에 소천하신 대천덕 신부님의 기념비입니다. 중간에 있는 까만 비석은 예수원 설립 44주년을 맞아 대천덕 신부님이 말년에 전파에 힘썼던 토지법에 관한 성경말씀과 신부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는 비석입니다. 오른쪽 돌판에는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 는 성경 레위기 25장 23절의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중간 까만 비석에 새겨진 내용입니다. 안식인, 안식년, 49년 만에 돌아오는 희년에 관한 성경의 이야기 내용입니다. 성경적 경제정의에 대한 논의는 나중에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비석의 하단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경의 토지법은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수고를 통해 얻은 수입은 그 사람의 소유가 되어 자유롭게 창조적으로 사업에 종사 할 수 있도록 하여, 아무에게도 종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토지에서 생기는 가치는 사회로 환원하여 고용을 최대화하고 지역사회를 개발시키기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희년의 법을 성취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래 사진은 예수원 손님부가 있는 건물입니다. 억새풀로 지붕을 씌워서 영국 전원풍 초가집 분위기 물씬 풍깁니다. 저도 집을 지을 때 지붕을 짚이나 억새풀로 하고 싶었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포기 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억새 지붕이 제 맘에 들었습니다. 억새 지붕 만으로는 비를 비할 수가 없어 억새 아래에는 슬레이트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붕의 더위와 추위를 억새 지붕이 막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주변 풍광과도 잘 어울립니다.

 

벽은 막돌을 쌓아서 만들었습니다. 역시 자연과 어울리도록 하려는 배려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이 갑니다만, 건축 당시의 여건과 또 오래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였을 지도 모르지요. 하여간 돌집은 잘 보수만 하면 콘크리트 집과는 달리 몇 백년을 견딥니다. 그리고 건물이 수명을 다 한 뒤에도 다시 재활용하거나 자연으로 돌려 보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원 건물은 돌을 사용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손님부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건물벽의 담쟁이 덩쿨이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더해 줍니다. 대천덕 신부님이 살아 계셨을 때는 이 곳 아래층이 집무실이였다고 합니다. 손님부는 2시부터 5시 반까지 당일 예수원을 방문하는 손님이 등록을 하는 곳입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이곳에 당일 도착한 방문객들이 다시 모여 이 곳 생활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습니다. 3일은 일정이 그리 많은 시간은 아닙니다. 그래서 도착하는 날, 가능하면 2시 쯤에 도착해서 등록 후에 방을 배정 받고 바로 주변을 돌아 보는 여유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주변은 경건한 분위기 이면서도 자연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풍광을 지니고 있습니다. 경치 좋은 곳 많이 다녀 봤지만, 산과 계곡에 어울리도록 잘 꾸며진 1만 5000평의 수도원 모습이 처음 방문한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사로 잡습니다. 웅장한 모습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건물은 없고 사람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아기 자기함이 묻어 나는 모습입니다.

 

 

아래 건물은 예수원 생활의 중심이 되는 본당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곳에 대강당이 있어서 식사도 하고 예배도 드립니다. 작업일과를 하기 전에 둘어 서서 체조도 할 수 있도록 다용도 강당입니다. 강당과 식당은 2층에 있고 아래층에는 보일러실, 숙소 등이 있습니다. 맨 아래 지계층에는 작업실, 세탁실이 있습니다. 지붕은 아스팔트 싱글로 되어 있어서 고풍스러움이 좀 덜하긴 합니다만, 벽은 막돌로 쌓아서 다른 건물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사진에서 보이는 앞 벽면의 맞은 편 벽은 예배당 전면입니다. 이 곳에 큰 나무가 서 있어서 예배당의 분위기가 아주 자연 분위기를 풍깁니다.

 

 

아래 사진은 본당 건물과 마주하고 있는, 맨 아래 건물이 앞 사진에서 본 손님부가 들어 있는, 층층이 이어져 있는 건물군입니다. 중간의 두 작은 건물에는 숙소로 쓰이는 작은 방 (정말 작습니다)이 여럿 있습니다. 사진에서 맨 위로 보이는 건물 안에는 수도원의 하일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티룸 (찻집)이 있습니다. 찻집은 오전 오후로 문을 열고 자유스럽게 커피나 파를 셀프 서비스로 만들어 마실 수 있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습니다. 내부를 사진 찍는 것이 허락된 유일한 곳이라 제가 아래에 사진 한 장 찍어 왔습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티룸의 바깥쪽 출입문은 비가 오면 사용을 하지 않습니다.

 

 

티룸의 내부 모습입니다. 오래 되어 반질 반질한 목재 기둥이 맘에 듭니다. 이 티룸은 예수원에서 판매하는 책, 설교테이프, 기도의자, 엽서 등을 오전시간에 구입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 곳의 수입이 예수원 운영경비의 1/3을 충당할 정도로 사랑을 받는 곳입니다. 기도의자는 정말 굿 아이디어 상품입니다. 저도 하나 사 왔습니다. (참고로 예수원은 방문객들에게 자유로운 헌금 외에는 투숙비를 받지 않습니다. 일년 8-9000명의 손님을 무료로 치른다고 생각하면, 대단한 병참 서비스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티룸 벽에 걸려 있는 사진 액자는 대천덕 신부님의 사모님이신 현재인 사모께서 그리신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액자에 넣은 것입니다. 현재인 사모님은 원래 화가십니다. 지금 예수원에 사시고 계시고 하루 3번 드리는 예배와 아침 식사를 제외한 나머지 식사 시간에 꼭 함께 하십니다. 금년에 88세 이신데 다리가 좀 불편하신 외에는 아직 정정하십니다. 현재인 사모님과 한번 식사 시간에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바라 보기만 해도 은혜가 넘쳐나는 그런 분이십니다.

 

 

예수원 마당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 입니다. 이 곳에는 입소할 때 핸드폰과 자동차 열쇠를 손님부에 보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대침묵, 소침묵 시간이 있고 묵상 기도를 하는 수도원이라 그런 규칙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묵은 마지막 날, 옆 방의 한 여자 손님이 핸드폰을 맡기지 않고 지니고 있으면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통화 내용이 그리 시급한 것도 아니였습니다. 조용한 수도원 생활에 정말 거슬리는 일이였습니다. 평소에 우리가 얼마나 불필요한 소음 속에 살고 있는 지 다시 한번 느끼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예수원의 텃밭입니다. 겨울이 6개월 이상이 이 산속에서 짧은 봄과 여름 동안 채소를 길러서 방문객들의 식탁에도 올리는 곳입니다. 우리가 지내는 동안에도 한 차례 여기서 수확한 상추로 쌈을 먹었습니다. 예수원은 무료 숙박이기 때문에 식단이 아주 단촐합니다. 밥과 국 외에 채소 위주로 된 한 두가지 반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방문하는데, 이들이 이 소박한 식탁에 잘 적응하는 지가 궁금했습니다. 물론 양은 추가로 먹을 수 있도록, 충분히 제공합니다.

 

 

 

산쪽으로 벽을 두고 있는 저장고 움막입니다. 이 안에 시럽이라든가 양파 같은 뿌리 채소를 저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원은 대천덕 신부님께서 도시의 삶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기도와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는 뜻을 지금도 묵묵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한나절 공동 작업에 참여하면서 이 곳에서 생활하는 멤버와 예수원 살림에 대해 조금 알아보았습니다. 겨울이 길어서 난방비가 많이 든다고 합니다. 기름으로 당할 수가 없어서 목재를 구해서 난방비를 줄이는 노력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숙소는 오래된 시설을 손 보아가면서 소박하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풍족하면 어디 수도하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이 우러나겠습니까.

 

 

 

과학은 발달하고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는 데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신 분이 대천덕 신부이셨습니다. 그가 한국교회를 향해 외쳤던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화두가 이번 방문길에 저를 두둘겼습니다. 리스크 매니저로서 세상을 바라 보는 눈은 각 개인과 사회가 위험을 최소화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 연구하는 것입니다.

 

예수원은 하루에 세번 예배를 드리고, 방문객들은 반드시 이 예배에 의무적으로 참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새벽 6시의 예배는 성경을 읽고 함께 성경의 내용에 대해 느낀 점을 말하기도 하고, 질문과 답을 하기도 합니다. 제가 참석했던 두번째 날 아침 예배에서 잠언 17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예수원 멤버 형제가 이런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 형제 (예수원에서는 서로의 호칭을 형제와 자매로 통일합니다) 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잠언 17장 18절 '지혜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 "라는 귀절이 있는데, 본인은 학교에 다닐 때 친척이 보증을 서 주어서 다닐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인이 어떤 보증을 서 달라고 했을 때, 이를 거절할 수 밖에 없어서 마음이 아팠다. 이 잠언의 귀절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 자문을 구한다.

 

다른 분들이 아무도 답을 주지 않길래 제가 이렇게 제 생각을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일상 생활에 대한 많은 규범이 나온다. 이런 규범이 우리는 오늘날의 삶에 어떤 기준이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 위험관리의 관점에서 정리해 보고자 하는 것이 내가 연구하고 싶은 내용이다. '보증'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생활에서 작지 않은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러나 보증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사회체계적으로도 보증의 문제가 심각해서 개인에게 보증을 지우는 것을 줄이고 보증보험과 같은 공적 금융기관을 통해 보증 수요를 해결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만약 보증을 어쩔 수 없이 서야할 경우가 있다면, 자신의 보증 능력을 점검해 보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즉, 한도 내에서만 보증을 서 주도록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감내하기가 힘든 수준이라면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고 보증을 거절하거나 보증 규모를 줄여야 한다.

 

그러나 가능하면 반드시 보증을 피하는 것이 성경의 정신과도 일치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자기 현금으로 사업을 하지 않고, 그 보유 현금 수준을 넘어서 은행의 빚을 얻어서 사업을 하려고 하고, 그 대출을 위해서 보증을 요구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현금으로 사업을 하는 것 보다 더 위험한 (리스크가 큰) 사업을 할 가능성이 높다. 즉, 이런 경우 보증으로 그 사업을 도와 주는 것은 친구를 파멸하게 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리스크 전문적인 용어로는 리스크 선호도 라고 함. 즉, 리스크 선호도가 공격적이라는 것은 high risk high return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임. 현금으로 사업을 할 때 보다 남의 빚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속성은 공격적인 리스크 선호도임. 물론 일정한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위험자본의 범위 내에서 리스크를 인수하며 사업을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임.)

 

예수원에도 다른 기도원과 다르지 않게 세상의 삶에서 상처를 받아 어려운 상황에서 위안을 받으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은 가 봅니다. 이런 분들에게 영적인 위안을 줄 수는 있지만, 현실적인 자문을 해 주지 못하는 경우에 답답함을 느낀다고 이 멤버가 말했습니다. 제가 쓴 책 '위험관리가 미래의 부를 결정한다' 두 권을 그 곳에 남겨두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 참고하고 자문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한 형제에게 말했습니다. 이 형제는 예수원에서 수요일 마다 강연 시간이 있는데, 저를 한번 초대해서 그런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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