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어제 '어사연'이라는 카페에서 추천한 책을 사서 읽으면서, 저도 이 주제에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사연은 어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약자입니다. 실버세대의 삶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는 모임인데 저도 가끔 참석합니다.
추천 받은 책의 제목은 '반만 버려도 행복하다' 인데, 이정옥이라는 시인이 요양시설에서 몸소 10여년간 살면서 느낀 점을 생생하게 적은 책입니다. 이 책의 말미에는 노년의 이슈인 죽음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앞으로 차차 죽음에 대해 특히, 존엄한 죽음에 대해 적어 보겠지만, 우선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문'을 올립니다. 이 선언문을 미리 작성하셔서 간직하지 않으시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마지막 권리를 박탈 당한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원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OOO의 선언문
저는 제가 병에 걸려 치료가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할 경우를 대비하여 저의 가족. 그리고 저의 치료를 맡고 있는 분들께 다음과 같은 저의 희망을 밝혀 두고자 합니다. 이 선언은 저의 정신이 아직 온전한 상태에 있을 때 적어 놓은 것입니다. 따라서 저의 정신이 온전할 때에는 이 선언을 파기할 수도 있겠지만.철회하겠다는 문서를 재차 작성하지 않는 한 유효합니다.
*저의 병이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고 곧 죽음이 임박하리라는 진단을 받은 경우.죽는 시간을 뒤로 미루기 위한 연명조치는 일체 거부합니다.
*다만 그런 경우 저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는 최대한 취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로인해. 예를들어 마약등의 부작용으로 죽음을 일찍 맞는다 해도 상관 없습니다.
*제가 3일 이상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을 때는 생명을 인위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연명조치를 중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저의 선언서를 통해 제가 바라는 사항을 충실하게 실행에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저의 요청에 따라 진행된 모든 행위의 책임은 저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그리고 쓸만한 장기가 남아 있다면 모두 사용해도 좋습니다.
남는 것은 의과대학에 기증합니다.)
년 월 일
이름: 서명:
위와 같은 형식이면 족합니다. 위에 내용 중에서 (그리고 쓸만한 장기가 남아 있다면 모두 사용해도 좋습니다. 남는 것은 의과대학에 기증합니다.) 라는 마지막 문장은 없이 하셔도 괜찮습니다. 이런 것 없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명연장 조치를 받게 됩니다. 대부분 이런 조치는 환자의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고 합니다 (제 의견은 아닙니다).
제가 존경하는 스코트 니어링은 100세가 되던 해에 스스로 곡기를 끊어 버리고 죽음을 택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러한 존엄한 죽음은 요즘 같으면 맘대로 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실버위원회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한달에 한번 정도 던체로 모시고 온천엘 가서 등 밀어 드리고, 점심 대접하는 행사 였습니다. 한 6년 했는데, 이 때 노인들의 상황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 때 김OO 권사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젊어서 아들을 먼저 보내고 며느리와 함께 80이상 건강하게 지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새벽 기도에 나오셨다가 넘어지셨습니다. 중풍기가 좀 있으셨는데 그런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곧 자리에 눕게 되셨는데, 자신이 다시 회복될 것 같지 않으시니깐, 아예 곡기를 스스로 끊으셨습니다. 그렇게 달포 정도를 자리 보전 하시다가 돌아 가셨습니다. 그 때 가끔 권사님을 찾아가서 예배드리고 위로하고 하시면서 죽음을 당당히 맞이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본인이 결정하신 길이니 존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병원으로 가셨다면 이런 선택을 하실 수는 없으셨을 겁니다. 이런 경우는 아니라도 의식불명이나 아주 힘든 경우가 발생했을 때, 이런 존엄을 죽음을 위한 선언문 같은 것 없이 병원에 입원했다가, 의료시설과 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면 존엄한 죽음은 물 건너 가게 된다는 사례가 위의 책에 나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