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 총통 기념관을 둘러본 사진입니다. 2차대전과 전후 처리에 처칠, 루즈벨트, 스탈린과 함께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 장총통입니다. 국공전쟁에서 패전 후 대만섬으로 옮겨와 오늘의 타이완을 세웠습니다.
<출입문은 밖에서 보면 대충문, 안에서 보면 아래 사진처럼 대효문이라고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장총통이 충효사상을 신조로 삼고 살았다고 합니다.>
<입구에서 본 기념관의 위용입니다. 수리 중이라 아시바가 걸려 있습니다.>
<정면 계단의 수가 89개입니다. 총통의 돌아가신 나이를 표시합니다>
<장총통과 김구 선생이 함께 있는 그림입니다. 기념관 벽면에 걸려 있습니다.>
<장총통의 방탄 롤스 로이스, 화교들이 2대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국부 손문선생과 장개석 총통이 함께 있는 그림. 두 사람은 동서지간 - 4번째 부인 송미령의 언니가 손문선생의 부인 - 이지만, 손문선생이 장 총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한 대의 롤스 로이스>
<장총통과 송미령 여사가 사용했다는 의자>
<장 총통과 송미령 여사의 그림. 송미령 여사는 11세 부터 미국에서 자라서 영어에 능통함. 장총통의 4번째 부인이 되었습니다. 대만 시절 주로 장총통을 도와 정치적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장총통과 멕아더 장군의 사진>
<박정희 대통령과 장총통의 회담 사진>
<장총통과 미국 존슨 대통령 - 사진 찍을 당시에는 부통령>
<장총통의 밀랍 인형. 책상이 흥미로워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습니다. 장총통의 맞은 편 의자가 송미령 여사가 사용했던 것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단순 면담용 의사가 아닙니다. 송미령 여사의 자리에도 서랍이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송미령 여사가 장총통을 보좌하여 늘 함께 직무를 봤다고 합니다. 장총통의 주요 정치적 의사결정에 대해, 송미령 여사가 제3의 객관적 입장으로 자문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리스크관리의 기본컨셉인 4 Eyes Princeple 즉, 한 사람이 의사결정에 대해 또다른 사람이 통제하는 체계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25톤의 위용을 자랑하는 장총통의 동상 머리 위에 민주, 이론, 과학 이라는 세 가지 국훈이 걸려 있습니다. 과연 민주였을까 하는 의문에서 이 사진을 찍어 봤습니다.>
<기념관 3층에서 내려다 본 정원과 음악당의 모습입니다. 주말이면 타이뻬이 시민들이 모여서 여가를 보내는 곳이라고 합니다>
<마침 일본인 관광객이 기모노 차림으로 장총통의 기념관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50년간의 일본 식민지였던 대만인데, 좀 기이한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덕수궁에 일본여인이 기모노를 입고 관광을 한다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어떨까요? 대만은 일본식민통치에 대해 반감이 덜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장총통과 아드님이 중국대륙을 바라보는 사진이라고 합니다. 대만에 사는 본토 중국인들은 무엇이든 임시라고 생각합니다. 집도 대충, 공공시설도 대충. 왜냐하면, 언젠가는 본토로 돌아갈 것이니 대충 산다고 합니다. 장총통도 죽을 때까지 본토 수복의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 G2 국가가 되었습니다. 장총통의 본토회복의 염원은 한낱 바램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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