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독일에서 지낼 때 경험했던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사회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다른 나라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지름길이였습니다. 독일에 있으면서 이러한 벤치마킹 사절단을 통역 지원하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80년대 말까지는 공장설비와 같은 하드웨어를 주로 견학했고 사실 눈에 보이는 것은 쉽게 모방이 가능했습니다.
90년대부터는 사회의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와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견학으로 경향이 옮겨 갔습니다. 금융결재제도, 국세심판소 운영 등과 같은 내용을 견학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도의 특징은 사회적 현상 (예를 들면, 구성원간의 신뢰, 평등, 법체계, 관습 등)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겉 모양만 모방해서는 결코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결재제도만 해도 우리나라와 같이 신용사회가 아닌 곳에서는 당좌수표가 별로 통용이 되질 못하는 반면, 신용사회인 서구에서는 매우 저렴하고 유용한 제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온라인 결재제도가 있는데 이것은 정말 세계적인 인프라입니다. 그런데, 단점은 이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한 엄청난 IT비용이 듭니다. 서구의 은행은 MIS (경영정보) 분야에 비중이 높고 온라인 결재에 대한 정보비중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신뢰를 기초로 하는 사회현상이 그 처럼 비용이 많이 드는 시스템을 시급히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 결여된 신용을 보강하기 위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는 예를 수도 없이 많습니다. 선진국 수준의 사회 효율성에 도달하려면 신용사회가 아니고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신용과 관련된 엄청난 비용이 결국 고스란히 사회비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실버타운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더니 파산하는 곳이 생겼습니다. 여기에 자신의 평생 모은 자산을 입주금으로 낸 노인들이 길거리로 쫓겨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실버타운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에 금이 가버렸습니다. 이것을 되돌리려면 엄청난 신용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이 바로 비용이 됩니다.
서론이 길어 졌습니다. 최근의 환율폭등 등 금융위기는 신뢰의 위기라고 전 감감원 위원장께서 발언하신 내용이 오늘 신문에 실렸습니다. 올바른 진단입니다. 달러 환율은 미국과 한국 경제력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기준점인데, 이게 하루 아침에 몇 십원씩 급등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원래 환율의 정의대로 라면). 그런데 실제 이런 일이 발생하여 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것은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정해야 하는 고도의 기술과 감정관리가 필요한데, 이것이 지금 부족합니다. 2000억불이상의 외환보유고가 있으니 걱정을 말라는 당국의 말도 도데체 믿지 못하겠다는 시장 참여자의 의구심이 있습니다. 아니 달러당 1000원이 실제 달러환율 가치라고 하는데 1400원이 되어 버렸고 또 어떻게 변할 지 모르겠으니, 그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너도 나도 달러를 보유하려고 할 수 밖에 없으니, 실제 필요한 달러 보다 더 많은 달러가 필요하게 됩니다.
1980년부터 13년간 유럽에서 살면서 이 사회가 어떤 이슈도 늘 효율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극복해 나가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시 제가 내린 결론은 사회의 투명성 입니다. 전문가들은 누구나 자신의 전문성과 의지에 따라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언로가 열려 있습니다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물론 상대적으로 라는 단서를 달겠습니다). 각 이익집단은 전문가를 동원하여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수단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제가 독일로 건너간 때, 산성비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환경오염의 심각성이 산성비로 누구에게나 심각한 위험 요소로 현실로 다가오자 사회가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큰 논란이 있었고 모든 전문가 집단이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난타를 벌였습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유럽은 재생에너지, 환경산업으로 자신의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한 것은 물론 그로부터 엄청난 돈을 벌어 들이고 있습니다. 그 때 어떤 독재정권이 그런 논란을 막아 버렸다면, 당시에 얼마간은 더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었겠지만, 오늘과 같은 발전은 없었을 것입니다.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제안이 빠져 있는 것이 전 금감원장의 제안에서 남는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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