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전원생활

봄의 문호나루

리스크맨 2015. 3. 20. 16:53

 

 

팔당댐이 건설 이전에 문호리에는 전국에서 상위규모의 나루터가 있었습니다. 강원도의 장작, 숯, 농산물이 문호나루를 거쳐 뚝섬나루 등 서울로 팔려 나갔숩니다. 이 당시 3000명이 이상이 거주하는 물류의 중심이였던 셈입니다. 소도시에 필요한 인푸라가 충분히 겆추어졌습니다. 농협, 우체국, 보건소, 면사무소, 초등학교와 중학교, 버스 정류장, 수퍼 마켓 등이 있었습니다. 전원을 따라 살기위해 혹시 포기해야 할 편의시설은 문호리에는 해당무였숩니다.

 

10여년전부터 전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서종면의 인구도 다시 늘어나 이젠 8000명을 넘기려합니다. 자녀들을 전원에서 교육시키려는 젊은 부모들의 유입이 특히 두드러집니다. 지역의 서종초, 수입초, 정배초, 서종중은 모두 혁신학교입니다. 정배초는 학생수 감소로 분교로 전환되었다가 이제 다시 독립학교로 승격하기도 했습니다.

 

문호나루 강변에 앉아 봄이 오는 모습을 마음에 담아 봤습니다. 낚시꾼이 메어놓은 등산의자가 하나 있습니다. 저는 가끔 이 곳에 앉아 명상에 잠기기를 좋아합니다. 겨울에는 두툼한 외투로 무장하고 10분 정도 명상시간을 갖습니다. 봄날에는 환상적입니다. 봄바람에 찰랑거리는 물결소리, 목이 말라 물 마시러 내려온 철새들의 지저귐, 운이 좋은 날은 물을 마시러 내려온 고라니 부부를 만나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세미나 참석을 위해 영등포구청역에서 신도림역까지 지옥철을 탔는데 참 괴로웠습니다. 지금 강가 60만평의 넓은 시야에 오직 저만 앉아 있습니다. 사람은 존재하기 위해 약간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도시의 효율성은 이런 인간다운 공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편의성 이면에는 인간다움을 상실해야 하는 복잡함이 숨어 있구나!

 

1993년 독일에서 귀국해서 압구정에서 명동 한일은행까지 출퇴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첫 일주일동안 지옥철을 타고 내리고 걷다가 한참 동안 까닭없이 눈물을 펑펑 쏟곤 했습니다. 지옥철 속에서 구겨지면서, 나의 존엄성이 짓밟힌 느낌을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6개월이 고비라더니 다시 서울생활에 적응했습니다. 그러나 1년이 한계였습니다. 우리가족은 서울을 떠나 문호리로 이사를 왔습니다. 20년간 힘들게 출퇴근 했지만, 전원생활을 포기하지 않게 한 이유는 이 나만의 60만평의 공간이였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세상살이 > 전원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원생활 취미 - 수상스키와 카약  (0) 2015.07.17
전원 중고책방  (0) 2015.06.12
서종면 인근 명소 모음  (0) 2014.12.01
천일염 볶기  (0) 2014.09.07
나의 정원  (0) 2014.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