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구 Risk Expert의 대만 견문기 1:
2015년 4월 세월호 1주기! 위험사회의 이슈를 뒤로 하고 아시아의 신흥 4룡 - 한국, 싱가폴, 홍콩, 대만 -의 하나인 대만을 찾았다. 대만은 우리나라 경상남북도 크기에 2,300만명이 살고 있다. 중부 산악지대로 인해 대도시 인구밀도가 그 어느 나라 보다 높다. 대만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11위, 22위인 우리나라 보다 앞선다. 국민소득은 우리나라보다 약간 적다.
대만은 평범한 사람이 살기는 어떤 나라일까? 대만경제를 유지하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대만은 현재 수준의 국가체계를 유지하고 발전해 나가는데 어떤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을까? 중국과 대만의 관계(양안 관계라고 함)는 일반 시민의 삶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만의 국가리스크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 관찰해 보려고 한다.
공항에서 입국할 때부터 소시민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원래 아열대 지방 사람들은 낙천적인 성격이다. 왜냐하면 의식주 문제가 심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추위가 없으니 옷과 집 비용이 거의 필요없다. 먹는 것도 3모작을 하고 열매가 많으니 이슈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대만인은 안 그럴까?
<음식점 앞에서 안내하는 여직원 모습>
<충렬사 복도를 청소하는 노인>
내가 생각하는 첫째이유: 행복은 유전적 요소가 50%라고 한다. 원래 대만 원주민들은 아마도 행복유전인자가 다를 것이다. 우리가 거리에서 마주치는 대만인들은 원주민(2% 정도 비율)이 아니고 100년전 본토에서 이주해온 본성인(84% 비율, 일제식민지 이전에 복건성/광둥성에서 대만으로 이주해온 중국인)이다. 대륙인은 1945년 이후 대만으로 온 사람들로서 14% 정도 인구비율을 구성하고 있다.
둘째이유: 대만은 오랫동안 독재정권 아래 일반시민들은 시달림을 받아왔다. 야당으로 정권교체가 가능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장개석 총통이 모택동과의 대공전쟁에서 패해서 대만으로 집단 피난을 왔다. 대만원주민들 (필리핀계통의 원래 대만인 및 복건성 출신으로 장총통 이전에 대만으로 넘어온 중국인) 입장에서는 창졸지간에 독재자의 지배를 받게 된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였다. 장총통은 수십만명 규모의 군대와 함께 대만으로 와서 통치자가 되었다. 공산당정권에 패한 원통함과 국력을 키워 본토를 재탈환하기 위해 강력한 독재국가를 운영했다. 228 사태가 바로 이런 과정에서 원주민들과 갈등이 일시에 폭발한 사례이다. 한 담배암매상 여인을 군인이 구타한 일로 대만인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국민당정부의 무자비한 진압과정에서 2만명의 타이완 엘리트들과 시민들이 학살되었다. 비록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지만 대만인들의 뇌리에는 국가권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잠재해 있어 일상의 행복감을 짓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용각사 한 귀퉁이에서 기도하는 노인>
셋째이유: 대만 경제는 노동집약적인 IT 산업이 떠바치고 있다. 삼성 스마트폰 부품의 45%, 애풀 아이폰의 90% 이상의 부품을 대만이 공급한다. 이들은 대기업이다. 대만은 잘 발달된 중소기업체계를 가지고 있다. 주로 경공업제품, 자전거/우산/의류 등이 중소기업 아이템이다. 서민들은 작은 규모의 자영업에 종사한다. 다들 뭔가 할 일을 갖고 있지만 경제적 풍요를 누릴 정도는 아니다.
어제 용각사를 방문했다. 이곳은 불교와 도교가 짬뽕이 된 사찰이다. 도교는 중국신화 속 인물을 숭배하는 종교이다. 젊은이나 노인이나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주문을 외우며 참배하고 주사위같은 나무조각을 땅바닥에 던지며 운세를 점쳤다. 기복신앙에 기대는 심리가 높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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