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가기 전에는 카우리 나무가 뉴질랜드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지 미쳐 몰랐습니다. 살아있는 카우리 나무와 목재, 카우리 나무에서 흘러내린 송진, 송진이 오래 묵어서 형성된 호박은 한 때 뉴질랜드의 중심 산업이기도 했습니다. 카우리 숲을 난벌하지 않고 잘 보존했더라면 두고 두고 뉴질랜드 중심 산업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겁니다. 당시에는 우선 먹고 살기 바쁘니깐 이런 장기적인 고려를 할 리더가 없었겠지요. 혹은 그런 생각을 가진 리더쉽이 있었더라도 당장 눈 앞의 이익 때문에 반대 했을 겁니다. 카우리 박물관에서 카우리 역사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에 가면 유럽인들의 무분별한 자연파괴에 맞서 뉴질랜드 자연을 지키려는 노력을 했던 마오리 리더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카우리 박물관은 여행객이 큰 맘 먹지 않고는 쉽게 갈 수 없는 시골 구석에 있습니다. 그리고 카우리 숲과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저도 오클랜드에서 출발해 다가빌(Dargaville)로 가면서, 1번 국도를 따라 왕가레이로 가지 않고, 카이와카(Kaiwaka)에서 호젓한 길을 찾아 가다가 우연히 표지판을 보고 이 곳을 들르게 되었습니다. 오클랜드 쪽에서 출발해서 북으로 간다면 이 박물관을 꼭 둘러보고 가야, 카우리 나무와 숲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카우리 박물관에 대한 정보는 www.kaurimuseum.com 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카우리 숲을 찾기 전에 꼭 방문해서, 카우리 나무의 역사에 대해 미리 좀 아는 것이 좋습니다.
아래 사진은 카우리 박물관 건물 모습입니다. 앞에서 보는 것 보다는 훨씬 큰 건물이 이 사진 뒤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뉴질랜드 건물이 대개 그러하듯이 단층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저도 집을 지어 봤지만, 단층 건축이 원가가 훨씬 적게 듭니다. 어쩌면 이런 건축방식이 뉴질랜드 효율성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됩니다.
박물관 초입에 설립자 데이비드 스텔링이라는 분에 대한 안내판이 있습니다. 입장료는 일인당 20달러인데, 내용은 아주 충실합니다. 시간을 충분히 할애해서 천천히 둘러 보면 뉴질랜드 초기 이주자의 생활과 카우리 나무에 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국인 이라고 하면 한글로된 1장짜리 안내문을 줍니다.
이 박문관의 정식 명칭은 Otamatea Kauri & Pioneer Museum 입니다. 여기에는 뉴질랜드 초기 개척자들의 생활상, 카우리 나무, 카우리 목재(log), 카우리 수지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카우리 통나무 입니다. 그 굵기와 길이가 상당히 큽니다. 카우리 목재는 매우 우수한 재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우수한 나무성질이 바로 카우리의 난벌을 초래한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큰 카우리 나무를 켜서 만든 길고 넓은 널빤지는 옹이로 인한 결함이 전혀없는 최고급 품질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하나로 된 카우리 널빤지 입니다.
옛날 카우리 벌목장에서 일꾼들이 카우리 나무를 파서 만든 욕조에서 목욕하는 모습입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카우리 욕조입니다. 꼭 우리나라 소나무로 만든 외양간 여물통을 상기시키는데, 여물통 보다는 더 굵은 카우리로 만들었겠지요.
한 카우리 통나무에 대한 자료입니다. 이 통나무는 1998년에 15,000달러 정도 가치가 있다고 했으니 11년이 지난 지금은 아마도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리겠지요. 1900년에는 불과 25달러 밖에 하지 않았다니, 물가상승률이나 카우리의 가치 상승을 짐작케 합니다. 90마일 비치 관광 중심지인 카이타이아, 또 Bay of Island 등 뉴질랜드 북섬의 관광지에는 꼭 카우리 기념품 상점이 있습니다 (카이타이아 카우리 상점을 나중에 또 소개하겠습니다). 카우리 나무로 만든 가구, 기념품은 지금도 한 산업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래 사진의 카우리 통나무는 벌목될 당시 1100살 정도의 나이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카우리 나무의 성장과 뉴질랜드 역사를 비교해 둔 것이 흥미롭습니다. 아래 사진 바깥 쪽 표시를 보면 1960년에 벌목이 되었고, 다음 칸에는 이 나무가 1840년에 굵기가 표시되어 있고, 이 때 뉴질랜드의 원주민과 이주민이 맺은 와이탕가 조약이 성립되었습니다. 다음 칸 1769년에는 쿡 선장이 뉴질랜드를 발견했고, 그 안 쪽의 1642년에 네델란드인 테즈만이 뉴질랜드를 발견한 해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네델란드가 그 때 이주민을 대규모로 뉴질랜드에 보냈다면 뉴질랜드는 지금 네델란드 연방이 되었을 텐데 아쉽네요.
위 통나무의 크기를 짐작케 하기 위해 한 관광객을 모델로 다시 한번 찍어 봤습니다.
카우리 나무는 생장 속도가 아주 더디다고 합니다. 소나무의 1/10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66년 자라면 아래의 크기로 큽니다. 제 핸드폰을 비교하기 위해 올려 두었습니다.
그 다음 150년된 카우리가 클 수 있는 굵기입니다. 아지까지는 별 감동이 없습니다.
아래 정도의 굵기는 300년을 자라야 도달할 수 있습니다. 카우리 나무는 나이를 먹으면 아랫 쪽 잔가지가 모두 떨어져 나가고 곧게 뻗어 올라 갑니다. 그래서 나무의규모를 표시할 때, 아래 둥지의 키를 병기합니다. 이렇게 곧게 높이 자란 나무는 수령이 오래지 않아도 선박건조에 많이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범선의 돛기둥이나 버팀대에는 이런 목재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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