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묵상은 요한복음 4장 1-10절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면 누구나 흔히 접했던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갈릴리로 가는 길은 지중해길과 베뢰아 길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직통길인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면 3일길을 절약하지만, 사마리아를 쌍놈 취급 하는 유대인들은 이 길을 잘 가지 않습니다. 사마리아에는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의 슬픈 과거사가 녹아 있는 땅입니다.
원래 12지파 였던 이스라엘 민족인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단 됩니다. 북의 10지파는 혼란과 죄악에 빠져 지내다가 앗스루에게 멸망되고 맙니다. 앗수르의 식민통치는 이 지역의 중산층 이상 이스라엘 리더들을 몽땅 딴 곳으로 보내고, 주변 5개 이민족을 정착시켜 완전히 잡종들이 사는 땅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패권국들이 항상 써먹는 통치 방법입니다.
사마리아지역은 원래 이스라엘 민족의 순수혈통은 사라지고 이민족의 피가 섞인 혼혈지역이 되어 '정통 유대인'로부터 멸시를 당합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그런 처지의 사람으로 유대인인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우물가에서 말을 건 사건이 큰 이변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엇그제 이 추운 엄동설한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몇 백회째 집회를 한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이런 예는 또 있습니다. 우리 말에 아주 나쁜 욕이 있는데, 차마 입에 담기도 그런 말입니다. 이 말의 어원은 '환향녀'입니다. 조선시대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망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여자가 부족한 청국은 우리나라 여인을 조공으로 차출해 갑니다. 그 중 일부가 살아서 고향으로 되돌아 오지만, 환황녀라는 몹쓸 천대를 받습니다.
위험사회는 리스크로 인한 손실의 인과 관계가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대구지하철 폭파사건으로 죽은 사람의 손실과 원인제공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나라가 망하도록 방치한 국가통치자의 책임과 환향녀의 억울한 멸시대접도 정비례 관계가 없습니다.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가 인류가 추구하는 사회인데, 이런 일은 정의와 참으로 거리가 멉니다. 국가리스크는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날마다 국가운영과 리더들에게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나라의 리스크를 결정하도록 기도해야 이유입니다. 교계의 어른들이 쓸데없는 선언을 한다는 기사를 읽고 매우 씁쓰레 합니다. 기도나 열심히 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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